서울북촌에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 춘곡 고희동선생가옥 고희동미술관

2024. 4. 5. 07:00국내 여행/서울 가볼만 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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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북촌에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 춘곡 고희동선생 가옥 고희동미술관

뷰포트의 작은 창 밖 세상 / Viewport


서울 북촌 한옥마을을 구경하며 창덕궁 돌담길을 따라 쭉 올라 가다, 중앙고등학교 방향으로 올라가는 낙타고개 입구에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이신 춘곡 고희동 선생의 자택 겸 고희동 미술관이 있습니다

 

큰길에서 워낙 안쪽에 들어가 있고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골목이 아니어서, 모르고 지나치기 쉬운 곳인데요, 오늘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양화가이신 춘곡 고희동 선생의 일생이 담긴 고희동 가옥을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춘곡 고희동 선생

먼저 춘곡 고희동선생에 대해 알아보고 가죠

무엇보다 가장 호기심을 끌었던 건, 춘곡 선생이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라는 점이었어요.
고희동 선생의 이력을 보면 선생은 14세에 관리 양성목적 기관인 한성법어학교에 입학하여 프랑스어를 배우던 중 서양화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1904년 대한제국 관청의 주사로 임명되어 관직에 들어서게 되었고, 당대 미술계 대가인 심전 안중식과 소림 조석진 문화에서 취미로 동양화를 배우던 중에 일본에서의 미술 연구출장명령을 받고 1909년 동경미술학교 양학과에 입학하셨습니다.
이게 바로 선생이 서양화를 접하게 된 계기가 된 거네요


1915년 귀국 후 서양화를 출품하고 도화교사로 활동하는 등 서양화가로서의 행보를 이어나갔으나 당시 서양화에 대한 낮은 인식 탓에 1920년 후반 동양화로 다시 전향하여 전통 수묵화법에  서양화의 색체 및 기법을 쓰는 절충 양식의 새로운 한국화를 시도하였습니다.

이후 고희동화백은 당대의 서화가들과 뜻을 합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미술단체인 서화협회를 1918년 창립하였구요 최초의 서화 잡지인 서화협회보를 발간하는 등 활발한 미술 활동을 전개하였습니다

1945년 조직된 조선 미술협회와 대한미술협회 회장으로 선출되었으며 이후 대한민국 예술원 초대 원장을 지냈고 1949년 창립된 대한민국 미술전람회(지금의 국전),여기에 심사위원을 맡는 등 많은 역할을 하다가 1960년 참의원으로 당선되어 정계에도 진출하셨답니다.

 

춘곡의 집 , 고희동선생 가옥

고희동선생의 자택은 선생이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1918년 직접 설계한 한옥으로 41년간 생활을 한 것입니다.

 막상 가보시면 아시겠지만,  이곳의 한옥 구조는 일반적인 북촌의 한옥과는 사뭇 다른 데요,
그 이유는 전통 한옥과 일본 가옥의 절충을 시도하여 사랑방 옆에 그림 그리는 화실을 따로 둔 것과 채와 채 사이를 다니기 편하도록 복도를 이어 낸 점이라고 해요

 

막상 안에 들어가 보면 좁은 복도를 쭉 따라가는 모습이 마치 일본 가옥의 모습을 연상 시킵니다.

 

 

이 곳도 여러번 위기가 있었다고 해요

 2000년대 초반 고희동 가옥이 헐릴위기에 처했을 때 북촌 주민과 시민단체에서 보존 운동을 펼쳐서 결국 2004년 등록문화재 84호로 등록되었고 2008년 종로구에서 매입하여 2011년 복원과 보수 공사를 마쳤습니다
이후 여러 가지 문화활동을 하는 데 활용하고 있습니다.

 

 

고희동 미술관 건물의 붉은 벽돌로 이루어진 담벼락에 고희동 선생의 자화상이 그려 있습니다
입구에는 종로구립 고희동 미술관이란 현판이 붙어 있구요 그림에서 보듯 여느 한옥 주택과는 조 금은 모습이 다릅니다

 

 

자 이제 모던미술의 세계로 살짝 들어가 볼까요?

 

 

너른 안마당에는 왼편에 고희동 선생의 동상이 있고 오른쪽으로 대나무들이 쭉 심겨 있네요

 

여기 보이는 춘곡의 집이 바로 고희동선생의 집이자 미술관 입니다.

 

 

담 쪽으로 이어진 좁은 길을 따라 들어가면 미술관 입구가 나오는데요 오른쪽으로 담 옆에 현관 있습니다

.

 

여기 보이는 사진 중에 안마당은 오픈 돼 있지가 않아서 직접 가볼 순 없고요 앞마당을 끼고 디귿자 형태로 이어진 복도를 따라 전시장들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 먼저 춘곡 고희동 선생의 약력과 고희동 가옥의 역사를 소개해 놓은 방을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데요
이후 이렇게 좁은 복도를 따라 다음 전시장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앞마당은 직접 가볼 순 없었지만 창틀 사이로 앞마당에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봤습니다

 

 

이외에 고희동 선생의 여러 작품들을 볼 수 있었는데요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바로 이 고희동 선생의 자화상 입니다
지금 현재 남아 있는 유화 중에 대표적인 작품들입니다

남색 저고리를 입은 모습이 바로 고희동 선생의 첫 번째 자화상 작품이고요

 

 

그다음은 관을 쓴 고희동 선생의 모습 그리고 그 이후 더 시간이 지난 후에 고희동 선생의 입니다.

여기 정자관을 쓴 자화상은 두루마기를 잊고 정정한 조선 사대부로 본인을 표현 표현함으로써 일본 유학 중신 본인의 신분과 민족적 자긍심을 발현하였습니다

그에 비해 부채를 든 자화상은 전통 표현 방식의 틀을 깨고 보다 개성 있는 본인의 모습을 나타내었습니다

 

 

좁은 안마당의 모습인데, 여긴 개방을 해 놓지 않아서 좀 아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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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방에 들어가면 이렇게 작은 소품들과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이 있는데요 무료는 아니고 작은 비용을 받습니다

 

 

나오는 길에 걸게에 그려 있는 선생의 모습이 “모던을 터치하다”라는 문구처럼 다가가기 어려웠던 서양화의 세계와 동양화의 세계에서 고민하던 선생의 모습을 짐작케 합니다

저도 왠지 2000년대에서 갑자기 모던보이가 활동하던 시대로 훅 넘어갔다 온 기분이네요.
찾아가는 길은 그다지 어렵지는 않은데, 너무 안쪽에 있어 많이 다니지 않으시는 곳이긴 합니다.
미술에 관심있으시거나 북촌 2경을 따라 오셨다면 지나는 길이니 한번 들러 보시기 바랍니다

 

춘곡 고희동 선생 연보

1886. 4월13일서울 출생 
1899. 한성법어학교 입학 
1904. 대한제국 관청(광학곡)의 주사로 임명 
1909. 일본 동경미술학교 양화과 입학 
1915. 귀국 
1918. 서화협회 출범, 원서등 번지에 집을 짓고 이사람 
1927. 서화협회 전람회에 한국화 출품, 이후 한국화에 전념
1945, 조선미술협회 회장 선출
1949. 제7회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심사위원(제9회까지 연임)
1950. 대한미술협회 회장 선출
1954. 대한민국예술원 종신회원 겸 초대회장 임명
1965.10 월 2일80세로 타계

 

● 춘곡 고희동미술관


▷ 주 소 : 서울 종로구 원서동 16

▷ 전 화 : 02) 741-8424

▷ 관 람 : 화-일요일, 10:00-18:00 (관람종료 30분 전까지 입장 가능)
 

              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추석 당일

▷ 입장료 : 무료 
          
▷ 주 차 : 없음 

▷ 대중 교통 : 지하철 3호선 안국역 3번출구 도보 14분

                    마을버스 종로01 : 빨래터, 고희동미술관에서 하차

                    버스 7025, 109, 151, 162, 171,172, 272, 601, 710 창덕궁, 서울돈화문국악당 정류장에서 하차 후 도보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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