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단]토지와 곡식의신에게 제사지내던 곳 - 종묘사직,사직,국사지신,국직지신,단유도설

2013. 9. 17. 10:06국내 여행/서울 가볼만 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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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신과 곡식의신에게 제사 지내던곳 - 사직단 (社稷壇)

 

오늘 소개해 드릴 부분은 바로 "사직단(社稷壇)" 입니다

사직단이라고 하면 들어보기는 했는데, 그게 정확히 뭐지? 하는 분들이 많으실겁니다

 

역사드라마를 보다 보면  "종묘사직"이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종묘는 예전 임금님들의 신위를 모신곳,,,대충 알겠는데, 사직이 뭘까? 하셨을 텐데요...

오늘 그 궁금증을 풀어 볼까 합니다.

 

사직단(社稷壇)의 사(社) 토지신, 직(稷)은 곡신의 신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예전의 국가들은 백성들의 생업인 농업이 잘 되어야 국가가 안정된 기반에서 성장할수 있었으니

당연히 영토의 유지와 농사가 잘 되기를 임금이 국가통치의 근간으로 삼을수 밖에 없었지요

 

그래서 사직은 천자나 제후가 되어 제사하는 제례로 중국의 주(周)나라때부터 봄,가을에 지내고,

봄은 곡식의 파종이 잘되기를, 가을은 수확이 잘되기를 기원하는 의례라고 합니다..

 

 

 

 사직단 정문[보물 117호]

 

사직단의 위치는 경복궁에서 사직터널쪽으로 가다 보면 찾을수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직단 보다는 사직공원으로 표기가 되어 있답니다 T_T

사직터널, 사직동... 사직이란 말이 이렇게 널리 쓰이는데, 정작 사직단은???

 

 

 

 

 

 

 

사직단 입구에 들어서면 사직단 안내도가 있는데요,

아이들과 가실일이 있다면 미리 여기 나오는 내용정도는 공부하고 가셔야 될겁니다

그래서 저도 늦었지만 다녀와서 공부......^^

 

 

 

사직단은 이처럼 국가의 근본이 되는것이기 때문에 나라가 세워지면 제일 먼저,

사직단과 종묘가 지어졌다고 합니다

 

 

 

단유도설 

 

국사지신(國社之神)/국직지신(國稷之神) : 태조때 사직단을 처음 조성할때에는 고려및 명나라의 제도의 따라 사직신의 위판을 만들고

                                                         태사지신과 태직지신으로 하였으나, 조선 세종때 황희,허조,맹사성이  <예기><제법>편을 따라 제후국의 격에 맞춰

                                                         국사지신과 국직지신으로 개정함

판위(版位) : 제사를 올리는 제관이 서있는 자리

음복위(飮福位) : 제사 음식을 음복하는 음복위를 직단위의 신좌 동북쪽에 남향으로 설치함

예감(예坎) : 제사를 마친후 폐백을 묻는 장소

등가(登歌) : 사직제사에서 음악을 연주할때 사용되는 악기편성으로 대청위나 단위에서 연주함. 유의 북문안에서 연주함

헌가(軒歌) : 사직제사에서 음악을 연주할때 사용되는 악기편성으로 유의 북문박에서 연주함. 軒架는 軒歌를 하는 곳

 

 

 

 

입구를 지나 북문을 거쳐 들어왔습니다.

이 길은 지신과 곡신이 다니는 길이랍니다.

 

 

 

 

하지만, 제례를 지내는 임금은 단유도설의 그림에서 처럼, 북문앞에서 실선을 따라 서문으로 이동한후

서문을 통해 위 사진의 길을 따라 판위까지 이동하여 제례를 지내게 됩니다

 

 

 

 

문 안쪽에 사직단이 위치해 있습니다

판위에서 남쪽을 바라본 모습이죠

 

 

 

 

 

 

 

 

건너편에 동문이 보입니다

 

 

 

 

 

앞에 설명드린 서문과 서문을 통해 판위까지 이어진 길입니다

 

 

 

 

서쪽에서 이어진 길과 북문과 이어진 길이 판위에서 만나게 됩니다

 

 

 

 

 

사직단중 국사지신을 모신 곳의 모습입니다.

아래 설명을 추가 하겠시지만, 뾰족하게 나온 신주가 있는곳이 국사지신을 모신 곳입니다

단으로 올라가는 계단 세개는 천.지.인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오른쪽에는 국직지신을 모신 곳이 보입니다.

위에 신주가 없죠...

 

 

 

 

이곳이 신실(神室)의 모습입니다

 

 

 

 

건너편에 남문의 모습이 보이죠.

 

 

 

 

"사(社)에는 돌로 된 신주(神主)가 있는데, 길이는 2척5촌이고, 둘레는 1척이며,

위는 뾰족하게 하고 밑은 흙으로 북돋았는데, 반이 단의 남쪽 섬돌위에 당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위 그림에서 보시는 뾰족하게 나온 신주가 있어 이곳이 사(社)임을 알수 있답니다

 

 

 

 

 

 

 

 

사직단 밖으로 나와서 지금은 사직공원으로 된 곳을 돌아 봅니다.

사실 이곳을 공원으로 한다는것 자체가 격에 맞지 않는 일이죠.

이는 한일합방이후 일제가 국가의 정신이 되는 곳의 격을 낮추고자 공원화 작업을 거쳐

1924년 5월 공원으로 개설되었고 북쪽 부지 500평을 매동공립보통학교에 분할하면서

가장 존엄한 곳이었던 이곳의 격이 공원으로 낮아 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더 한건 1966년 8월에 독립문 - 사직동간 도로를 신설하면서 사직단 정문이

15m 뒤로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1970년대에는 북쪽에 종로도서관  동사무소  파출소   서쪽에 수영장등이 건설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사직단에서 길을 건너가면 풍림 스페이스 아파트가 있습니다.

이곳에 가면 아래와 같은 사직단 입구의 옛 자리가 남아 있습니다.

 

 

 

 

 

 

 

 

 

아파트 건립을 위한 사전 발굴 조사에서 사직단 건물터가 발견된 거지요...

일제때 망가지고, 이후는 개발의 논리에 밀려 많이 훼손되었군요.

 

 

 

사직단 유적지에서 바라본 길 건너 사직단 입구의 모습입니다.

원래대로 복원이 되었으면, 제가 서있는 이곳도 사직단으로 복원이 되었어야 했겠지요.

 

많이 알고 배울수로 아쉬운데 우리 문화유적에 대한 복원 과정입니다.

 

사직단(社稷壇)" 조선 왕조의 기틀이 되었던 곳입니다.

이제 저도 정리하면서 배운것들 잊지 않게,

눈 내린 겨울, 이곳을 다시 찾아 보고 싶습니다.

 

 

찾아 가는 길 :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1번 출구 에서 사직터널 방향 도보 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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