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미양요와 운요오호전투의 상처를 간직한 소나무와 성벽을 바라보며, 초지진 草芝鎭 - 강화도 여행지

2019. 10. 14. 00:16국내 여행/인천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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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양요와 운요오호전투의 상처를 간직한 소나무와 성벽을 바라보며, 초지진 

草芝鎭

  - 강화도 여행지

032-930-7072  인천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 624-1

 

강화도 내의 수 많은 보 와 진들을 둘러보다 강화와 김포를 잇는 두번째 다리인 초지 대교앞에 있는 초지진에 도착했습니다.초지진은 신미양요때 미군이 처음으로 상륙했던 곳이기도 하고, 일본의 운요오호 침략을 마딱뜨린 곳 이기도 합니다.

 

 

 

 

 

초지대교를 건너면 김포의 대명항이 머지 않은 곳에 있어 초지대교를 건너 강화로 오시는 경우에는 가장 먼저 만나는 유적지 이기도 하죠



 

 

 

 

▲ 강화 초지진

 

 

 

 

 

 

초지진은 규모면에서는 광성보나
갑곶돈대보다 그리 크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작은 진을 두고 1871년 미국의 로저스 함대와 1875년 일본의 운요오호와의 격전이 벌어졌습니다. 미국과의 전투에서는 미군에게 점령당했고, 일본 운요오호 사건은 결국 1876년 강화도 수호조약으로 이어져 인천 원산 부산항을 개항하게 되었고 결국 일본의 주권찬탈까지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죠



 

 

초지진에 도착한 시간이 막 문을 닫는 시간이어서 안에 들어가지는 못하고 밖에서만 돌아 볼 수 밖에 없어 아쉬움이 좀 남았습니다

 

 

 

 

 

 

▲ 초지진 성벽위로 순시 두글자가 씌인 깃발이 바람을 맞고 있습니다

 

 

 

 

입구에는 당시의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갑곶돈대의 전쟁박물관에서 봤던 사진들이군요



 

 

 

지금은 그저 조용하고 한적한 저 곳에서 나라의 명운을 걸고 전투가 벌어졌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습니다



 

 

 

초지진 성곽주위를 돌다 보면 무척이나 오랜 역사의 질곡을 봤을 것 같은 오래된 소나무 한 그루가 보입니다. 

 

 

 

 

1656년 초지진이 처음 세워질때 심은 소나무로, 이 소나무에는 당시 포격에 의한 상처가 남아 있다고 합니다

 

 

 

 

이 외에도 성벽에도 피탄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데요



 

성벽에 있는 당시의 흔적을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 성벽에 남은 전투의 상흔

 

 

 

 

 

 

소나무 역시 포탄에 의한 상처를 평생 이렇게 안고 가야 하겠구요



 

 

 

 

초지진 주위를 몇차례 돌고 보니
해가 떨어질 시간이 멀지 않았습니다



 

 

 

주차장 건너편 대명포구쪽으로
뭔가 보이네요

 

 

 

 

 

커다란 태극기 문양이 보이는 군함이 한척 있죠. 여기는 김포함상공원과 해군 초계함으로 활약했던 운봉함입니다. 바다 건너 이 곳 초지진의 아픈 역사를 다시 되밟지 말자는 뜻인것 같기도 하구요...  이 날은 다음 여정이 있어 들러보지 못했지만 다음에 대명포구 들를 기회가 있으면 한번 가 봐야 겠습니다. 진정한 전적지 순례의 마지막 퍼즐 같기도 하구요



 

 

 

 

지금은 초지대교를 통해 김포와 이어지는 곳이지만, 당시는 이 곳이 조선의 첫 관문 같은 역할을 했던터라 그 어느곳보다도 많은 상처를 받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 한 나라와는 우방국이 되어 나라의 안위를 협력하고 있고, 또 다른 나라는 지금도 끊이지 않는 갈등을 겪고 있다니, 참 역사의 교훈은 언제나 현실을 직시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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