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8. 10. 07:00ㆍ국내 여행/서울 가볼만 한 곳
딜쿠샤 - 3.1운동을 전세계에 알린 앨버트테일러의 가슴뭉클한 이야기
DILKUSHA 1923 서울 가볼만한곳
서울 사직로 사직터널 부근에 오래된 외국 양식의 건물이 버려진채 있었습니다. 한동안 그냥 그렇게 있던 그 건물에 , 영화 타이타닉의 여주인공이 옛날을 회상하며 감춰진 이야기가 흘러나오듯, 어린 시절의 이곳을 추억하던 미국인 노인의 기억을 통해 그 건물이 어떤곳인지 알려지게 되었고, 뜻밖에도 이곳에 살던 젊은 외국인 부부에 의해 3.1운동이 전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집의 이름은 딜쿠샤, 발음도 낯설고 많이 들어보지 못한 이름이지만, 이 이름에는 구한말 일제강점기에 이 곳에 왔던 한 젊은 부부의 이야기와 3.1독립만세 운동에 얽힌 사연들이 숨어 있습니다.
지금은 건물이 복원되어 관람객도 받고 있지만, 단순히 옛날 건물의 복원보다는 3.1만세운동이 일제의 탄압과 검열속에서 어떻게 외국에 알려지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이 곳에 살던 젊은 외국인 부부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는지, 그리고 지금은 이곳이 어떻게 다시 우리에게 알려지고 지금처럼 복원되었는지를 풀어보려고 합니다
그냥 지나치면 모르고 사진 한장 찍고 지나쳤을 그 곳이 정말 어떤 가치를 가지고 우리에게 작은 울림을 주는지 같이 살펴 보시죠. 이곳은 딜쿠샤입니다.
찾아 가는 길 및 관람 안내
주소 : 서울 종로구 사직로2길 17 딜쿠샤 전화 : 070-4126-8853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3번출구 도보 15분 |
관람 시간 : 화~ 일요일 09:00 ~ 18:00 (17:30 입장 마감) 관람료 : 무료 한국어 해설 : 화 ~ 일요일 * 온라인 사전 예약 후 이용 https://yeyak.seoul.go.kr/web/main.do 외국어 해설 : 영어 중구구어 - 이용 일주일 전 전화 예약 |
딜쿠샤 Dilkusha 의 의미
조금 낯선 단어인 딜쿠샤는 페르시아어로 "기쁜마음" 이란 뜻의 단어입니다. 이곳은 원래 앨버트 테일러와 메리 테일러 부부가 1924년부터 살던 집입니다. 당시 광산 기술자였던 아버지를 따라 조선에 왔던 미국인 사업가 앨버트 테일러와 동양의 여러나라를 순회하며 연극을 하던 영국인 배우 메리가 만나 인도에서 결혼후 1917년부터 한국에 살게 되었죠.
메리 테일러의 저서 호박목걸이 (Chain of Amber)에 당시의 이야기들이 있는데 (앨버트가 메리에게 선물한 호박목걸이가 메리와 앨버트를 이어주는 매개체로 등장합니다) 딜쿠샤는 메리가 방문했던 인도 러크나우의 궁전으로 여기서 이름을 가져온 거구요
테일러부부가 한국에서 먼저 살던집은 서대문인근의 작은 회색집이었어요. 이후 테일러부부가 한양 도성 성곽을 따라 산책하다가 은행나무가 있는 넓은 땅을 발견하고 후에 여기에 집을 짓게 된 게 바로 딜쿠샤입니다.
은행나무가 많던 동네는 지금의 행촌동(은행나무 마을이란 뜻)이고, 지금도 서대문에서 시작하는 한양성곽이 행촌동을 지나 인왕산쪽으로 이어집니다
운명의 변곡점이 된 고종장례식과 3.1만세운동
그러던 부부에게 운명을 바꾼 일이 생겨납니다. 1919년 연합통신의 통신원으로 활동하던 테일러는 고종의 국장과 3.1운동, 그리고 제암리 학살 사건, 독립운동가의 재판등을 취재하게 됩니다.
아주 극적인 우연같은 일이 생기는데요, 3.1운동 하루 전 날이 1919년 2월 28일 테일러 부부의 아들 T.테일러가 세브란스 병원에서 태어납니다. 그떼 고종의 국장을 취재하던 테일러는 병원 침대속에 감춰진 종이 뭉치를 발견하죠.
그건 바로 독립선언서 였습니다. 다음날인 3.1만세운동때 사용될 기미독립선언서 였죠. 일재의 감시를 피해 병원에서 몰래 인쇄하고, 차마 외국인 임산부의 방은 뒤지지 않을거라고 생각한 간호사가 여기에 숨긴겁니다.
독립선언서를 알아챈 테일러는 즉시 3.1운동에 대한 기사를 작성하여 독립선언서와 함께 동생 윌리암에게 주었고, 윌리암은 검문검색을 피하기 위해 007작전처럼 이 기사를 구두 뒤축에 숨겨 삼엄한 검문을 뚫고 일본 도쿄로 가서 전신으로 미국에 송고하여 뉴욕타임즈에 3.1 운동이 알려지게 됩니다.
어찌보면 정말 운명같고 드라마 같은 얘기죠. 독립선언서의 의미를 잘 이해한 테일러 형제의 노력에 의해 한국인들의 독립에 대한 열망이 일제의 탄압을 뚫고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으니 말이죠.
이후에도 테일러는 제암리학살사건과 독립운동에 관한 기사를 꾸준히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했습니다
일제에 의해 추방되다
그리고, 테일러 부부는 일제에 의해 추방되게 되는데요, 바로 1941년에 태평양 전쟁을 일제가 일으키면서 한국에 거주하던 적국 국민들을 수용소에 구금했다가 1942년 추방하게 된 겁니다. 결국 이후로 테일러는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결국 1948년 심장마비로 사망하게 되죠.
이후 1948년 아내 메리는 남편의 유해를 한국으로 가져와 언더우드와 성공회성당의 도움으로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묘원에 안치되었습니다. 이때 아내 메리도 딜쿠샤를 찾은게 마지막이 되었구요.
잊혀졌던 딜쿠샤를 다시 찾다
이후 딜쿠샤는 1959년 자유당 조경규의원이 매입후 국가로 넘어가면서 오랜기간 방치되어 오다, 테일러부부의 아들인 브루스 T.테일러가 자신이 태어난 딜쿠샤를 찾기위해 서일대 김익상교수에게 의뢰하여 지금의 딜쿠샤를 다시 찾게 되었습니다.
미국내 한국 총영사관에 노인이 된 자신이 유년시절 살았던 은행나무가 있던 집을 찾아 달라는 요청을 영사관이 김교수에게 요청하면서지요
이때까지만 해도 한국에서는 딜쿠샤가 정확히 어떤 건물인지 몰랐었는데 부르스 테일러가 2006년 한국에 입국해서 가지고 온 사진들과 자료를 통해 이곳이 정확히 어떤 곳인지 밝혀졌고, 그 뒤 부르스 테일러의 딸인 제니퍼 테일러가 2016년 방문하여 자료 394점을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하면서 이를 근거로 딜쿠샤가 복원되었습니다.
어찌보면 테일러 부부 3대의 걸친 인연이 잊혀졌던 역사의 사실을 다시금 알게 되었고, 테일러 가족의 한국과의 인연도 이렇게 매듭지어지게 된거죠
이후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국가등록문화제 687호로 등록되어 복원되었습니다.
딜쿠샤 돌아보기
이제 딜쿠샤의 얽힌 이야기를 들어봤으니 딜쿠샤를 돌아봐야 겠죠?
붉은 벽돌로 지어진 2층 건물의 주변을 먼저 둘러보죠.
건물 초석에 영문으로 딜쿠샤 1923이란 글자가 선명히 새겨 있습니다. 초기 이 집의 이력을 연구하던 학자들도 이 의미를 해석하지 못했었는데요, 테일러의 아들이 이곳을 찾게되면서 이 정초석에 새겨진 의미가 설명되면서 이곳이 찾던 딜쿠샤임을 확신 할 수 있었죠
테일러 부부가 살던 당시의관련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전체 이야기를 알고 나면 하나 하나 정말 소중한 자료들입니다
앞서 언급된 호박목걸이는 메리의 유고집의 제목이 되었구요
부르스가 가지고 있던 자료들은 딜쿠샤를 복원하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1층 거실
1층 거실은 부부가 지인들을 초대해 파티를 여는 공간이었습니다. 벽난로가 있고 계단옆에는 커다란 괘종시계가 있었구요
벽난로 위에는 가문의 문양과 조상들의 초상화 판화등이 있고 기록에 서술된 것처럼 실내는 노란색 페인트로 칠했습니다
부인 메리는 미국에서 미술학교를 다니며 그림 그리는걸 좋아해서 한국에 있는 동안에도 주변 사람들과 풍경들을 그림으로 많이 남겨 두었습니다
호박목걸이는 메리의 유고집을 아들 테일러가 출판한 책이고, 은행나무 옆 딜쿠샤는 아들 테일러가 어린시절의 추억들을 묶어 출판한 책으로 호박목걸이는 한국어판으로도 출간되었습니다
2층에는 공간이 나뉘는데 연합통신 기자로서 테일러의 활동에 대한 자료들이 한켠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딜쿠샤의 심장부 2층거실
2층 거실은 부부가 여가시간 대부분을 보내는 공간이었습니다.
특히 자수 화조도 병풍을 접거나 펴거나 위치를 바꿈으로 방 전체의 공간의 크기를 조절하는 방식으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당시 궁에서 병풍을 사용하던 방식이라고 합니다
그 밖의 시설 하나하나와 소품 하나하나까지도 지금 봐도 진귀한 것들이 많은데, 아마 당시로서는 꽤나 귀한 것들이었을 것 같습니다
후기
딜쿠샤에 대한 어릴적 추억을 찾으려는 부르스 테일러에 의해 시작된 딜쿠샤찾기는 테일러 가문의 자료등을 통해 3.1운동이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된 이야기를 비롯해서, 일제에 의해 추방된 후 한국에 묻히게 된 이야기, 그리고 결국 어릴적 추억을 찾게된 부르스 테일러와 그 딸의 이야기까지, 한국 근대사의 소용돌이 이면에 한 외국인 가족의 이야기가 같이 묻혀있었습니다.
지금이나마 이렇게 복원된 딜쿠샤에 얽힌 이야기들이 따뜻하고 잔잔히 오랫동안 기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테일러가 기억했던 은행나무
부르스 테일러는 임진왜란때 장군집앞 은행나무가 집 앞에 있었다고 했다는데요, 이때문에 당시 김익상교수는 이순신장군의 출생지인 충무로 일대를 뒤졌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때 찾지 못한 은행나무는 정작 지금도 딜쿠샤 앞에 오랜 시간 머물고 있습니다. 다만 이 곳이 임진왜란때 행주대첩의 주인공인 권율장군의 집터였다는 것 만 다를 뿐이구요.
딜쿠샤를 방문하시게 되면, 이런 이야기들을 꼼꼼히 읽어 보시고 찾아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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