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최고 여류 문인, 허균의 누이였던 허난설헌의 일생과 허난설헌 생가터 - 강릉여행

2020. 3. 16. 00:26국내 여행/강원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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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최고 여류 문인, 허균의 누이였던 허난설헌의 일생과 허난설헌 생가터-강릉여행

  • 허균과 허난설헌
  • 난설헌蘭雪軒 허씨許氏, 허난설헌 許蘭雪軒 (1563-1589)
  • 허난설헌 생가

강원도 강릉, 초당 순두부 마을로 유명한 강릉 초당동에는 홍길동전을 통해 조선시대 부정 부패한 관리와 서자의 아픔을 홍길동이란 주인공을 통해 통렬히 비판한 허균과 조선시대 손꼽는 여류 시인으로 유명했던 난설헌 허초희의 생가터와 기념공원이 있습니다.

 

난설헌 허초희 동상

 

지도에는 허균허난설헌 기념공원이나 허난설헌 생가터, 허균허난설헌 기념관등으로 되어 있습니다. 앞서 포스팅했던 초당 할머니순두부집에서 잠깐 대기 시간이 필요했던 터라, 바로 인근에 있는 허균서난설헌 기념관에 들렀습니다.

 

 

초당 순두부마을을 지날때마다 허난설헌 생가터와 기념관 표지가 늘 보였었지만, 늘 들러보지 못하고 지나쳤던 기억이 있었는데, 오히려 잘 된것 같기도 했구요..  먼저 볼 곳은 허균허난설헌 기념공원 한편에 있는 허난설헌 생가터입니다. 바로 주차장 앞이어서 찾는데는 별로 어려울 것도 없구요..

 

허난설헌 생가터

 

허균허난설헌기념공원: 033-640-4798 강원 강릉시 초당동 477

 

 

허균허난설헌 기념공원은 크게 허균허난설헌기념관과 초희전통차체험관, 허난설헌 생가터등으로 되어 있습니다.

 

허균과 허난설헌

저 홍길동전을 지었던 허균은 워낙 유명해서 많이 아실겁니다. 허균과 허난설헌의 부친 허엽은 서경덕의 제자로 당시 세력가였던 동인의 거두로서 큰 세도를 누리던 집안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집안의 형제들 모두 뛰어난 문장으로 유명했다는데요,

 

 

맏형 허성(許筬)은 임진왜란이후 통신사로 일본을 다녀와 일본의 재침을 예견하였고, 둘째 형 허봉(許)은 명나라에 다녀와 기행문 〈조천기〉를 쓴 인물로 유명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누이 허초희는 어려서부터 뛰어난 여류 문장가로 이름을 날렸다고 하니, 집안 모두가 당시로서는 큰 가문의 뛰어난 자제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강릉 초당당 고택
허난설헌의 생가터로 알려져 있으나, 1912년 초계 정씨의 후손인 정호경이 고쳐 지은 건물입니다

 

허균은 이러한 가문의 배경과은 어울리지 않게 서인들과 어울리고 관직에 있으면서 당시 조정의 부패와 서얼제도의 불합리등을 비판하다 역모에 연류되어 생을 마감하게 되었죠.

 

 

난설헌 허초희(본명이 초희(楚姬), 난설헌(蘭雪軒)은 호입니다) 역시 재주에 비해 안타까운 삶을 살고 말았는데요, 남편 김성립과 결혼후 두자녀를 어려 잃고 아이의 유산과 함께 유복하지 못한 결혼생활끝에 27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습니다. 뛰어난 재주에 비해, 행목하지 못한 삶을 살고 갔던 여러 천재형의 예술가들과 비슷한 운명을 걸었던 셈이죠.

 

 

난설헌蘭雪軒 허씨許氏, 허난설헌 許蘭雪軒 (1563-1589)

그녀의 부친인 허엽의 호가 초당인것을 보면 이 곳 초당에서 자리를 잡았던 것 같습니다. 허난설헌은 8세에 <광한전백옥루상량문>을 지어 신동으로 이름을 날렸었고, 당시 유명한 학자였던 이달(李達)에게 사사했습니다.

 

 

지만 결혼후 당시 시대상을 감안해 보면, 뛰어난 재주는 오히려 그녀의 인생을 오히려 불운하게 만든것 같습니다. 남편과 시댁과의 갈등이 오래 있었다는 기록이 있고, 자녀 둘을 잃고, 이른 나이에 유명을 달리 한 것은 재주에 비해 맞지 않는 시대를 살아온 여류 문장가의 안타까운 인생사인거죠...

 

 

허균이 명나라 시인 주지번(朱之蕃)에게 시를 보여주어 후에 중국에서 난설헌집이 발간되었고, 그의 시 168편을 수록하여 1612년 중국에서 펴낸 취사원창(聚沙元倡) 2000년 9월 발굴되어 전해집니다. 당시의 경제 문화적 대국이었던 중국에서 그녀의 작품들이 인용되었다는 건, 무척이나 고무적인 일이었겠죠.

 

 

허균 허난설헌 기념관과 허난설헌 기념공원에는 그녀의 가슴아픈 인생을 담은 싯귀들이 전시되어 있읍니다.

 

허난설헌 생가

이제 허난설헌이 태어났었던 생가터에 가 보겠습니다. 별도의 입장료는 없고, 휴관일과 마감시간만 잘 지켜주면 방문이 가능합니다.

 

 

솟을대문이 있는 오래된 건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오전 9시~오후 6시까지 오픈하고
매주 월요일이 휴관일입니다

 

 

아직은 사람도 많지 않고, 시기적으로 여행을 다닐만한 때가 아니어서 방문객들이 별로 없습니다.

 

 

한켠에 새 한마리가 날아와 물을 먹다 저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ㅎㅎ

 

 

집 뒤로는 키 큰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아마 5월 이후나 여름쯤 이었으면 나무들이 푸르름을 안고 있어 더 보기 좋았을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사람들로 북적였을 텐데, 지금은 호젓하니 조용히 구경하기 좋습니다

 

 

고택안에 들어서면 별다른 안내나 해설문구등이 많지는 않습니다... 

 

 

 

 

허균의 생애를 소개한 글이 있네요.

 

 

허난설헌의 동생이었던 허균의 영정입니다...

 

 

앞마당을 지나 담을 따라 안채로 들어서면..

 

 

난설헌의 영정과 기록들이 있는 방이 있는데, 촬영이 안 되는 곳이어서 사진은 별도로 올리지 못했습니다

 

 

이런 고택에 방문하게 되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게 지붕의 기와와 추녀의 곡선미와 각각 양식이 다른 굴뚝의 모양입니다. 이 집의 굴뚝의 모양도 특이합니다

 

 

허균의 싯구가 적힌 족자가 방문 사이로 보입니다

 

▲ 한창 봄이거나 여름이었다면 푸르른 모습이 더 아름다웠을 겁니다

 

후원에 가지런히 모여있는 장독 모습이 정겹습니다

 

 

그러고보니 요즘 아이들은 장독을 모르고 자라는 아이들도 꽤 많다는 얘기가 생각납니다...

 

▲ 한창 여름이었다면 푸르른 모습이 더 아름다웠을 겁니다

 

 

광 인것 같은데, 한편에 디딜방아가 보입니다.

 

 

략 휙 돌아보고 온다면 10분정도, 저처럼 이리 저리 상세히 돌아보고 방안의 싯귀들도 읽고 하다보면 30분은 넘어 걸리는 것 같습니다. 별도의 안내가 좀 더 많았으면 좋았을 것 같구요..

 

 

생가터를 둘러봤으니, 이제 기념공원 건너편에 있는 허균허난설헌 기념관에 들러 봐야 겠습니다. 매번 올때마다 안내판만 보고 초당 순두부만 먹고 가곤 했는데, 조금이나마 맘이 편해 지는 것 같습니다.
마음 한편으로는 시대에 맞지 않았던 천재들의 일생이 마음 아프기도 하구요... 그럼 다음 포스팅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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