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하문으로 더 많이 알려진 북악산성곽길 출발점 창의문(보물 제 1881호) - 한양 사대문 과 사소문

2022. 7. 29. 07:00국내 여행/서울 가볼만 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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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하문으로 더 많이 알려진 북악산성곽길 출발점 창의문(보물 제 1881호)  

- 한양 사대문 과 사소문

서울 종로구 청운동 산 1-1  (보물 제 1881호)


옛 한양 도성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크게 4대문과 그 사이 사이에 4소문이 있었습니다.
사대문은 잘 아시듯 조선의 건국이념이 되었던 성리학의 이념을 담은 인의예지 (智)를 각 대문에 담아 이름을 지어, 동대문(흥인지문 興仁之門) 남대문(숭례문 崇禮門) 그리고 지금은 남아 있지 않은 서대문(돈의문 敦義門)과 북대문(숙정문 肅靖門)이라 지었죠. 

 

그리고 한양 성곽 4대문 사이 네개의 작은 문을 만들었고, 지금 흔희 4소문 四小門이라고 불리는 창의문 (彰義門, 속칭 紫霞門 서북 소문), 홍화문 또는 혜화문 ( 弘化門, 惠化門), 광희문 (光熙門 동남 소문), 서소문 또는 소덕문, 소의문 (西小門,昭義門 남서 소문) 이라 불렸습니다

이 중, 광희문(광희동) 혜화문(혜화동, 동소문동) 서소문(서소문동)은 현재 우리 지명에도 남아 있어요.

 

 

이중 창의문은 본명 보다도, 자하문이란 명칭이 더 익숙한데요, 실제 우리 지명에도 자하문 고개, 자하문 터널등 창의문이라는 이름보다 자하문이라는 이름이 더 쉽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자하라는 명칭의 유래는 여러 속석이 있지만, 인근 청운동 계곡의 모습이 개성의 자하동과 같이 아름답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얘기가 있는데 이것도 개성 상인들을 통해 붙여졌다는 얘기도 있어요

 

 

한양 사대문과 사소문, 궁궐도 (수선전도)

 

녹색표지가 창의문인데, 이쪽을 넘어가면 지금 연신내쪽을 통해 개성으로 가는 방향이었으니까, 자하문이란 이름이 개성상인들이 붙인 이름이라는 얘기도 그럴것 같습니다.

 

창의문 (자하문)

 

창의문이라는 본명보다 자하문으로 더 많이 알려진, 창의문의 얽힌 이야기들을 풀어 보겠습니다

 

찾아 가는 길

창의문 (자하문)
위치 : 서울 종로구 창의문로 118
교통 : 시내버스 1020, 7022, 7212번 자하문고개.윤동주문학관 정류장 하차 

 

대중 교통으로 시내버스을 타고 자하문고개,윤동주 문학관 정류장에서 내리시면 바로 창의문 앞입니다.

 

창의문의 역사

 

먼저 창의문에 관련된 역사를 살펴 보고 가겠습니다.
아래 안내에 보면, 창의 즉 "올바른 것을 드러나게 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고, 인근 계곡의 이름을 빌어 자하문이라는 별칭으로 불리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재밌는건, 태종 13년에 풍수학자 최양선이 창의문과 숙정문이 경복궁의 양팔의 해당되므로 길을 내어 지맥을 상하게 해서는 안된다고 하여, 창의문과 숙정문을 닫고 소나무를 심어 통행을 금했다고 하네요

 

 

하지만, 그 후에도 군인들의 출입이나 (세종 4년) , 궁궐 보수 작업 (광해군 9년)등의 용도로 길을 열었다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창의문의 관련된 가장 큰 역사적 사건은, 1623년 인조 반정때 반군이 세검정을 거쳐 창의문을 통해 도성에 들어와 광해군을 몰아내고 반정에 성공하면서 입니다.
창의문을 통과 하면 바로 경복궁으로 당시 궁으로 사용되던 창덕궁이 멀지 않아, 반정의 성패가 여기 달려 있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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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1741년 (영조 17년) , 창의문이 인조반정시 의군이 진입한 곳이니 성문을 개수하면서 문루를 건축하자는 훈련대장 구성임의 건의가 받아들여져 비로서 서울 성곽의 문루로서의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재미 있는건 이런 사실들이 1956년 창의문 보수공사때 천장 부재에서 기록이 발견된겁니다. 지금 창의문에는 인조반정때 공신들의 이름을 새겨놓은 현판이 결려있어 당시의 일들이 명확하게 될 수 있었죠.

 

 
 
창의문은 4소문중 유일하게 예전 모습을 간직하고 있고, 수백년간 사람의 발길에 길들여진 박석이 윤기를 발하고 있습니다

 

 

 

연잎모양의 누혈장식과 봉황장식

연꽃 모양의 누혈장식과 봉황 한쌍

 

이외에도 빗물이 잘 흘러내리도록 문루 바깥쪽으로설치된 한 쌍의 누혈장식은 연잎모양으로 아름답게 조각되어 있고, 성문의 무지개 모양 한 가운데 봉황 한 쌍이 새겨져 있는데, 속설에 따르면 이는 닭 모양을 그린 것으로 창의문 밖 지형이 마치 지네처럼 생겼기 때문에 지네의 천적인 닭을 그려 넣은 것 이라고 합니다.

연잎모양의 누혈장식과 봉황의 모습은 당시 한양에서 한양밖으로 나가는 방향, 창의문 현판이 있는 반대쪽에 있읍니다
이렇게 안내문에 나와 있는 하나 하나를 찾아 보는것도 재미 있습니다. 안그랬으면 아마 훅 보고 지나갔을 텐데 말이죠.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잠시 계단을 오르면 이렇게 문루정도만 남아있는 창의문이 보입니다

 

 

문루에 창의문이라는 현판이 보이지 않는데, 도성 밖에서 안쪽으로 향하는 방향에 현판이 있읍니다. 그러니까 지금 보는 건너편에서 봤을때 얘기죠

 

 

창의문 밖을 보면 똑같은 모양의 아치같은게 보이네요....
지금 지도를 보면 창의문 밖으로 인왕산부터 이어지는 북악스카이웨이가 있는데,  이 부근이 고가도로 처럼 이어진 부분이예요.(정식명칭은 북악스카이웨이 3교)  저기를 지나면 유명한 자하손만두와 카페 산모퉁이로 가는 길이 나옵니다

 

 

북악스카이웨이3교 밑에서 봐야 비로서 창의문의 현판과 정면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창의문 현판

 

 

문루 아래서 올려다 보면, 소문이라고 하기에는 꽤나 커 보입니다.

 

 

성문 안으로 들어가보면 천정에 아름다운 그림이 있습니다.  숭례문도 그렇고 각각 특색있는 이런 문양들이 있는데요

 

 

구름과 한쌍의 봉황이 그려 있습니다.
아마 앞에서 얘기한 봉황이 조각되어 있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 일까요?

 

창의문에는 봉황의 그림이 그려 있읍니다

 

숭례문에는 용의 문양이 그려 있답니다

 

 

한양  도성 순성길 백악구간의 시작점

 

지금은 한양도성길의 4구간중에 백악산 숙정문 구간의 시작점이기도 합니다.

 

백악구간이라고 되어 있는 구간의 시작이 여기 창의문 부터예요. 창의문을 시작으로 백악산 숙정문 와룡공원을 거쳐 혜화문까지 가는 구간이죠.  산이 많아 난이도가 가장 높은 구간이예요

 

 

이 구간의 개방 시간은 여름에는 오전 7시~저녁 7시까지네요. 
이렇게 창의문의 유래와 역사에 대해 알아봤는데요, 이제 다음 여행은 성곽길을 따라 순성을 할건지, 아니면 길 건너 인왕산구간을 따라 갈 건지예요.  이번 여행길은 길 건너 윤동주문학관부터 수성동계곡까지 가는 인왕산 구간을 가 보았죠.
은근히 볼 거리가 많은 구간입니다. 그럼 다음을 기대해주세요

 

DAUM에 소개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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