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7. 13. 07:00ㆍ국내 여행/서울 가볼만 한 곳
사극에 나오는 종묘사직의 의미와 토지와 곡식의 신을 모시는 사직단(社稷壇)
사적 121호 사직단 : 서울 종로구 사직동 1-28
사극을 보다 보면, 나라의 위기가 닥칠때마다 신하들이 임금께 "전하 종묘 사직을 보존하시옵소서" 라는 하곤 하죠.
무슨 뜻인지도 잘 모를 그 말에는 조선시대의 기본 가치가 담겨 있음을 저도 나중에야 알게되었습니다.
여기서 나오는 단어, 종묘사직이란게 종묘와 사직을 각각 의미하는 것이고, 그 각각의 뜻이 어떤 것이기에 그토록 위기시마다 신하들이 목놓아 외쳤는지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사직단을 통해 풀어보겠습니다
사직단 위치 - 서울 종로구 사직동 1-28 - 지하철 3호선 1번출구에서 사직터널 방향으로 도보 5분 소요 |
황학정에서 인왕산길을 따라 내려오다보면 단군성전을 지나 사직공원이란 푯말이 보입니다. 큰길 그러니까, 경복궁역에서 사직터널쪽으로 가다보면 오른편에 사직단 정문이 보입니다
좌묘 우사 (左廟右社)
먼저 종묘사직을 얘기하려면, 좌묘우사에 대한 얘기부터 시작이 됩니다. 좌묘우사란 아래 수선전도에서 보듯이 궁궐인 경복궁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종묘 (좌묘), 오른편에는 사직 (우사)를 두어, 이를 같이 일컬어 좌묘우사라고 합니다.
옛날 중국 주나라 예법을 적은 주례의 고금기편에 "왕이 새 도읍을 정할때 왼편에 종묘, 오른편에 사직을 둔다" 라고 하였고 조선건국시 이 원칙을 따라 궁의 오른편에 사직이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그럼, 사직의 의미가 무얼까요?
사직단의 사(社) 토지신, 직(稷)은 곡식의 신을 상징합니다.
예전 조선은 농업중심의 국가였으니, 농업이 생계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산업이고, 심지어 농사의 작황이 임금의 덕에 달려있다고까지 할 만큼 국가의 통치기반이었었죠
따라서 임금이 진행하는 제례로 중국 주나라때부터 봄에는 곡식의 파종이 잘되기를 기원하고, 가을에는 수확이 풍성하기를 기원하는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 제례였습니다.
토지신과 곡식의 신을 의미하는 사직
이런 이유로 사직단이 궁궐 가까이에 있을 수 밖에 없고, 종묘와 더불어 국가의 근본을 상징하는 말로 쓰였습니다.
그렇게 놓고 보면 왜 그리 나라의 위기때마다 중신들이 임금께 목놓아 종묘사직을 외쳤는지 알 수 있을것 같으시죠?
여기가 큰 도로에서 보는 사직단의 대문입니다.
1395년 사직단 창건 당시에 지어진 건 아니고, 1592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이후에 중건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진 것으로 추산됩니다. 현재는 보물 177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대문의 위치 또한 예전에 있던 곳에서 도시계획과 도로소통을 위해 1962년에 14m, 1973년에는 다시 10m 뒤로 옮겨 지금의 위치에 오게 되었습니다
사직단 부분 명칭과 역할
사실 사직단은 그렇게 화려하거나 복잡한 구조가 아닙니다. 아래 약도에서 보듯 오히려 너무 단촐하고, 뭔가 의미가 있을 것같은 형태로 이루어져 있죠.
사각형의 담장 안에는 또 작은 사각형의 담장이 있고 그 안에는 조그만 사각형태의 제단이 두개 있는 형태입니다.
이를 잘 표현해 놓은 조선시대 사직서의궤중 단유도설(壇壝圖說)편을 보면 좀 더 자세한 설명이 나와 있네요
아래 그림의 아래쪽이 북쪽이므로, 두개의 제단중 동쪽(왼편)이 국토의 신인 국사지신(國社之神)을 모시는 사단(社壇)이고, 서편(오른편)의 제단이 오곡의 신인 국직지신(國稷之神)을 모시는 직단(稷壇) 입니다.
그 외에,
판위(版位)는 제사를 올리는 제관이 서있는 자리이고,
음복위(飮福位)는 제사 음식을 음복 곳
예감(예坎) 은 제사를 마친후 폐백을 묻는 장소
등가(登歌)는 사직제사에서 음악을 연주할때 사용되는 악기편성으로 댓돌위나 단위에서 연주합니다
헌가(軒歌) 는 사직제사에서 음악을 연주할때 사용되는 악기편성으로 댓돌 아래서 연주합니다
이제 위에서 설명한 곳들을 사진을 통해서 확인해 보겠습니다
제례를 지내게 되면, 왕은 이리로 들어가지 못하고 담을 따라 서문을 통해 들어가게 됩니다.
북신문을 지나 네모난 판위까지 이어진 이 길은 지신과 곡신이 다니는 길(향축로)이구요
향축로의 끝에 네모난 판위가 보입니다.
오른편에 보이는 서문에서 사진 왼편 판위까지 이어진 어로를 통해 왕은 판위까지 오게 됩니다
왕이라 해도 신이 다니는 길과 왕이 다니는 길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었네요
사단과 직단
아래 보이는 두개의 단이 사단과 직단입니다.
사단과 직단이 있는 담 밖으로 판위가 보이네요.
서문을 통해 사단과 직단을 볼 수 있는데요, 건너편에 먼쪽의 단이 국사지신을 모신 사단입니다. 사단에는 돌로 된 신주를 모시고 있는데 위 사진의 두번째 단의 오른편에 보면 하얀 타임캡슐 모양의 신주가 보입니다
사직단은 네개의 대문안에 유라고 불리는 작은 담이 둘러싸고 있고, 이 작은 담을 통하는 문이 유문입니다.
앞서 약도처럼 생긴 조선시대 사직서의궤중 단유도설(壇壝圖說)에서 단은 사직단의 단, 유가 바로 이 담을 뜻합니다
서문에서 보니 판위까지 이어진 어로의 모습이 보이죠. 왼편에 홍살문 세개의 모양을 한게 북문입니다
사단과 직단에는 각각 천 지 인을 상징하는 세개의 계단이 있습니다.
서문을 지나 이제 신실이 있는 남문까지 왔습니다
남문을 통해 보면, 앞에 있는 길이 신위행로네요. 멀리 저 건너편이 북문이구요
사단과 직단은 각각 한변이 7.65m이고 높이가 1m인 단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오른편 제단에 하얀 신주가 보이시죠?
사직단의 훼손과 복원
남문을 통해서 보니, 사직단 위로 종로도서관이 내려다 보는 형태가 되었네요.
아마 조선시대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겠죠.
감히 나라의 가장 중요한 본분인 사직단을 내려다 보다니 말이죠...
사직단은 1910년 일제에 의해 제사가 폐지되면서 인근 부속건물들이 철거되었고, 결국 사직단 단 두개만 남겨놓고 공원으로 조성되기에 이릅니다.
이후 1963년 사적 121호로 지정되면서 관리의 시각으로 들어서게 되었고, 이후 1980년대 복원 작업들을 통해 1988년부터는 전주 이씨 대동 종약원에서 매년 사직대제를 이어오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사진 뒷편에 한옥 건물들이 이번에 복원된, 제례의 준비 공간인 전사청(典祀廳)입니다. 총 8개의 건물로 제례 준비 과정과 제례에 사용되 던 그릇과 제관들의 복식도 재현되어 있다고 합니다
더우기 현재 사직단 근처에 있는 사직파출소와 사직동 주민센터등도 이전해서 2027년까지 안향청 권역까지 복원하겠다고 하니, 아마 몇년후 다시 찾을 때 쯤이면 점차 옛 위엄을 되찾은 모습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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