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선생이 서거하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혼이 살아 숨쉬는 곳 경교장 (京橋莊)

2022. 7. 6. 07:00국내 여행/서울 가볼만 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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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선생이 서거하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혼이 살아 숨쉬는 곳 경교장(京橋莊)  

전화 :02-735-2038   서울 종로구 평동 108-1 (강북삼성병원내)


옛 서대문인 돈의문 인근지역에는 예전 역사적 장소와 함께 볼거리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에서 강북삼성병원으로 걸어가다 보면 병원 뒷편에 오래되어 보이는 서양식 건물 한채가 있습니다. 이곳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을 지내신 김구선생께서 마지막을 보내신 곳, 바로 경교장입니다

경교장 - 강북삼성병원 내에 있습니다

 

사적 465호로 지정되어 있는 경교장은 한때 중국에서 귀국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활동했던 곳이고, 이곳에서 김구선생께서 안두희의 총탄에 서거하신 곳이죠.
그 이후 경교장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여러 나라의 대사관 건물로 사용되었고, 삼성병원에서 인수하여 사용되던 것을 2001년 서울시 유형 문화재로 지정, 2005년 국가 사적 465호로 승격, 이후 건물 복원 작업을 거쳐 2013년부터 시민들에게 개발 되었습니다

 

김구선생님의 필적이 있는 태극기

 

 

이후 서울 역사박물관 분원으로 운영되면서 지속적인 복원 작업외에도 더 충실해진 전시품들의 보완작업을 통해 지금은 단순한 경교장의 모습만이 아니라, 대한 민국 임시 정부의 활동과 그와 관련된 역사적 유물들이 같이 전시되어 있어, 임시정부의 활동상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김구 선생과 경교장

 

저와 함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과 해방후 귀국 이후의 임시정부와 김구선생의 활동 상을 같이 따라가 보시겠습니다

 


경교장(京橋莊) 위치

 

서울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4번 출구에서 강북삼성병원방향으로 올라 오다 병원을 끼로 언덕길을 오르면 삼성병원 차량 출입구가 보입니다. 여기가 경교장이예요

 

경교장

 

관람 안내

운영일시 : 화~일요일, 09:00~18:00 (입장마감:17:30)
휴관일 : 1월 1일, 매주 월요일(공휴일의 경우 개관)
입장료 : 무료 (사전예약 없이 자유관람)

 

 


해방후 임시정부의 거쳐였던 경교장

최초 경교장 건물은 1938년 일제 강점기 최창학이라는 광산업자의 집으로 일본식 이름인 죽첨장으로 불리었던 것을, 김구선생이 사용하면서 인근에 있는 경구교의 약칭인 경교(京橋)에서 따와 경교장(京橋莊)으로 이름을 지었습니다.
1945년 광복후 임시정부 요인들이 귀국했지만, 당시 미군정과의 관계에서 정식 정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임시정부의 활동 공간이며 숙소로 경교장이 사용되었던 거죠

경교장

 

1949년 김구선생이 경교장에서 서거한 이후, 경교장은 질곡의 시간을 거치게 됩니다.
중화민국 대사관 사택, 월남 대사관등으로 사용되기도 했고, 지금 삼성병원의 전신인 고려병원에 매각되어 병원시설로도 이용되던것을, 2001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죠

 

경교장 입구에서 신발을 벗고 안내자료를 들고 경교장에 들어서면 제일먼저 김구선생님의 흉상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옆에 있는 관람순서에 따라 1층과 2층, 그리고 지하 전시실까지 돌아보시면 됩니다

 


1, 2층 전시실

 

먼저 김구선생의 흉상 뒷편에 있는 오리엔테이션실에 들어가면, 경교장과 당시 상황에 관한 동영상을 시청하면서 오늘 전시관들 돌아볼 동선을 그려봅니다

보통은 1층에서 바로 지하층에 있는 2전시실과 3전시실로 가는데, 저는 1층과 2층을 먼저 보고 지하 전시실을 보러 갈 겁니다

 

1층 응접실은 임시 정부의 국무위원회등의 주요 회의들이 개최되었고, 김구선생이 국내외 주요 인사를 접견하셨던 곳입니다.

 

 

가운데 김구선생의 동상이 태극기 옆에 자리잡고 오는 이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래된 옛 가옥의 넓은 창 밖으로는 빗줄기와 창문을 타고 빗방울이 흐르고 있습니다

 

 

좁은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는 깅에는 당시의 대리석과 복원된 대리석을 나란히 배치시켜서 기존의 모습을  소개해 줍니다

 

 

 

2층은 선생의 침실과 집무실이 있고 이곳에서 서거하셨습니다

 

 

좁은 복도를 따라 가면 일제시대 지은 건물답게 다다미 바닥이 있고, 선생의 거실이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김구선생께선 안두희가 쏜 총에 운명을 달리하셨고, 의자 뒷 유리에 예전의 총탄 흔적이 남아있겠군요

 

 

이후로 김구선생의 저격의 배후 관련해서는 많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결국 안두희가 한 시민에 의해 살해되면서 역사에 묻히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당시 임시정부 요인들의 숙소로 쓰였던 방은 지금은 주인 없는 휑한 공간으로만 남아 있습니다

 

 

 

모스크바 3상회의 신탁통치 결정에 따라 개최된 임시정부 국무위원회

 

2층의 반대편에는 응접실겸 서재가 있습니다

 

 

어두둔 응접실 공간은 임시정부가 돌아온 후 김구선생과 국내 정당 대표들이 모여 회담과 국무회의가 진행되던 곳입니다

 

 

책상 위에 놓은 김구선생의 사진 하나가 이전 역사속의 장소임을 얘기해 주는 것 같습니다

 

 

한 켠에 있는 벽난로는 임시정부 시절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응접실 밖 창측으로는 김구선생의 집무실과도 연결되는 구조이군요

 

 

1, 2층 전시실을 모두 돌아보고, 이제 지하에 있는 전시실로 가 보겠습니다.
계단은 정말 오래전 모습 그래도 복원이 되었네요

 


임시정부의 역사를 전시한 지하 전시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비교적 폭이 좁습니다.
당시 경교장의 지하공간은 보일러실과 부엌등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특히 보일러실 북측에는 밖으로 통하는 문이 있어서, 1948년 4월 19일 김구선생이 남북협상을 위해 평양으로 가려고 할 때, 북한행을 만류하는 사람들을 피해 이리로 나가셨다고 하네요. 위 사진에 당시 사용하신 문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환국 기념 사진

 

아마 당시 임시정부 요인을 포함한 우리 국민들에게 이 사진 한장은 정말 가슴속까지 뭉클하게 저려 오는 사진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전시된 자료들을 보고 잇으면, 당시 환국한 임시정부가 그렇게 따뜻한 환대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미군정과 외국의 시각으로 봤을때는 아직 불안하기 그지 없는 정치 환경내에서의 정치 세력처럼 보였던 거죠

 

 

하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은 당시 임시정부의 정신과 유산을 상당부분 물려 받았는데요, 먼저 국가인 애국가와 국기인 태극기가 그대로 전승되었고, 국호인 대한민국과 정부 조직등이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전수 하였습니다

 

 

한편에는 경교장의 유래와 지나온 흔적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눈길을 끄는 또 하나의 전시물들...

바로 김구선생의 유묵(남긴 글씨)인 신기독이란 글입니다. 홀로 있을때도 삼가한다는 의미로 항상 자신을 수양하는 선생의 마음을 보여준 글씨입니다.

 

 

그리고 그 옆의 태극기는 김구선생이 중국에서 미국으로 가는 매우사신부에게 준 태극기로, 광복군에 대한 우리 동포들의 지원을 당부한 선생의 친필 글씨가 적혀 있읍니다

 

 

"매우사 신부에게 부탁하오,  당신은 우리의 광복운동을 성심으로 돕는 터이니, 이번 행차에 어느 곳에서나 우리 한인을 만나는 대로 다음의 말을 전하여 주시오,  망국의 설움을 면하려거든, 자유와 행복을 누리려거든, 정력과 인력과 물력을 광복군에게 바쳐 강노말세인 원수 일본을 타도하고 조국의 광복을 완성하자"

 

김구 선생의 인장과 백범일지 친필 서명본

 

 

그리고 김구선생이 1932년 발간한 도왜실기, 이봉창 윤봉길의거등 한인애국단의 활약상을 기록한 전기이고, 그 옆의 시계는 김구선생의 시계입니다. 옆의 책에 윤봉길의사와의 사진이 있는 이유를 짐작하시겠죠?

저 시계는 윤봉길의사께서 거사하시기 전 김구선생의 시계와 바꾸었던 그 시계입니다.
윤봉길 의사의 유품이기도 하고 김구 선생의 유품이기도 한 셈이죠.
오랫만에 가슴 뭉클한 기분이 듭니다

 

 

선생이 즐겨 암송하셨다는 임연당 이양연(李亮淵·1771~1853)선생의 시 야설 (野雪) 입니다.  흔히 서산대사의 시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죠...
싯구 하나 하나가 난세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당신의 마음 가짐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임시정부 선전부 활동공간으로 홍보와 언론 관계업무를 담당하던 곳입니다

 

당시 역사의 주역이셨던 이승만 전 대통령, 김규식선생, 엄항섭선생, 이시영선생등의  모습이 이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모든 전시실을 돌아 보고 1층으로 올라와 보니, 김구선생의 모습이 다시금 무겁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경교장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분원으로 관리하고 난 이후 보다 내실있고 잘 관리가 되어 오는 것 같습니다. 
한동안 코로나로 개방되지 않았었지만, 지금은 무료로 일반인에게 공개되는 곳이니 자녀들과 와 보기에도 좋은 곳 같습니다. 인근의 서울역사박물관과 경희궁, 그리고 돈의문박물관마을에서 추억의 시절로 돌아가 보는 것도 좋을 것 같구요

 

DAUM에 소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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