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문 박물관 마을 프랭크 스코필드 기념관 "한국의 독립을 도운 캐나다인들" 석호필과 미스터션샤인

2022. 7. 1. 07:00국내 여행/서울 가볼만 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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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문 박물관 프랭크 스코필드 기념관 -한국의 독립을 도운 캐나다인들
석호필과 미스터 션샤인
돈의문 박물관 마을 스코필드 기념관


돈의문 박물관 마을 골목 골목을 돌다보면 문득 다른 곳과는 느낌이 다른 낡은 가옥을 마주치게 됩니다.
입구에는 3.1독립운동 기념전시, 34번째 푸른 눈의 민족대표 프랭크 스코필드 라는 제목의 전시가 진행되고 있네요
그 외에도 한국 독립운동및 일제의 잔학상을 알리는데 기여한 캐나다인들의 이야기가 있는데요, 그중 사진 한장이 정말 쿵하고 가슴을 내려 앉게 했습니다.


보는 순간 가슴이 내려 앉았던 그 사진


스코필드란 분에 대해서는 저도 들어본적은 있지만 깊이 알지는 못하는 터라, 잠시 가는길에 들러보기로 했습니다.
아래 자세히 서술하겠지만, 뜻밖에도 우리나라 독립운동에 큰 공헌을 하셨던 분이고, 일제에 의해 자행된 제암리 교회 학살 사건을 외국으로 보도하셨고, 1968년에는 대한민국 건국 공로훈장을 받으셨고 사후에는 그의 뜻에 따라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었습니다.

프랭크 스코필드 박사 (석호필박사)


그냥 지나치면 몰랐을 스코필드 박사의 이야기를 전시품을 배경으로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스코필드 기념관 위치

 
스코필드기념관
서울 종로구 신문로 2가 31
 
돈의문박물관마을 내 위치 (19번)


돈의문 박물관 마을에 들어서면 그림의 19번 위치가 스코필드 기념관 입니다.
입구에 아래 처럼 일반 가정 집 처럼 되어 있어 그냥 무심코 지나치기 쉽겠더라구요

먼저 간단히 프랭크 스코필드 박사에 대해 알아보고 가도록 하죠.

34번째 푸른 눈의 민족대표 프랭크 스코필드 (한국명 석호필 石虎弼 )

스코필드 박사는 일제 강점기인 1916년에 캐나다장로회 소속 선교사로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교수로 한국에 와서 세균한 교수로 근무했습니다.
이때 자신의 한국 이름을 만들었는데 바로 석호필 (石虎弼) 이랍니다. 석호필이라면 미국 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에 나오는 스코필드 (웬트월스 밀러)가 떠오르지 않으세요? 스코필드를 우리나라식 이름으로 석호필로 지은분은 스코필드 박사가 원조시네요. 발음이 비슷해서 그렇게 지으셨겠지만, 한자의 뜻을 보면 돌처럼 굳은 마음으로 호랑이처럼 강인하게 한국을 돕겠다는 뜻이 담긴 이름이라고 합니다.
단순히 발음만 비슷한게 아니라 깊은 뜻이 담겨 있는 이름이었어요


스코필드 박사가 우리나라 독립운동과 연결된 건, 3.1 독립운동에 영향을 주었던 미국 대통령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를 당시 3.1운동 민족대표중 한 분인 이갑성선생께 전하였고, 당일 파고다 공원에서 3.1운동의 시작과 함께 현장 사진들을 찍어 해외에 알리는 역할을 하셨습니다

.


그후, 일본에 의해 잔인하게 발생한 수원 제암리사건 (주민들을 교회에 모이게 한후 문을 잠근뒤 총격을 가하고 방화한 사건)이 발생하자, 그 현장을 촬영하여 해외에 알리는 역할을 하는 등, 우리나라의 상황을 세계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하셨습니다.


결국 이러한 활동으로, 다음해인 1920년 일본에 의해 강제 추방되어 본국인 캐나다에서 교수로 재직하다, 1958년 독립을 쟁취한 한국에 돌아와 서울대 수의대 교수로 복귀하여 재직하였고,
1968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을 받은 스코필드 박사는 1970412내가 죽거든 한국 땅에 묻어주오라는 유언을 남기고 영면하여 1970년 국립 현충원에 안장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나라에 알려지게 된 이름이 바로 "34번째 푸른 눈의 민족대표"라는 칭호이고, 석호필이란 이름이 남게 되었습니다. 아마 미드에 나온 스코필드의 애칭을 석호필로 부르게 된 것도 누군가는 스코필드의 한국식 이름 석호필이란데서 따온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전시장


전시장은 무척 조그마 합니다.
입구에는 스코필드 박사의 흉상이 있고, 가슴에는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을 메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전시장 한편에 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호랑이 인형이 있는데, 석호필이란 이름에 나오는 호랑이를 상징하는 조형물로 사용한 거군요. 어려운 사람을 돕고 강한자에게는 호랑이처럼 엄격함으로 대한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당시 선생이 한국의 참상을 세계에 알리려는 노력을 엿볼수 있는 대목입니다


서재를 재현한 방에는 당시 사용하던 언더우드 타자기와 세균학을 전공한 교수를 연상할 수 있는 현미경,


그리고 아주 오래된 옛날 카메라와 편지, 돋보기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사실 다소 유품이나 관련 자료들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아마 일제에 의해 추방되면서 당시 자료들은 많이 없어졌을거란 생각이 듭니다


이 밖에도 한국의 독립을 도운 캐나다인들 이란 주제에 맞게 3분의 캐나다인들의 업적이 포스트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한국의 독립을 도운 캐나다인들 그리고 사진 한장의 여운


로버트 그리어슨 Robert Grierson
한국이름 구례선, 캐나다 의료 선교사로 함경북도 성진에 정착하여 제동병원과 교회를 세우고, 의료활동을 하였습니다.
동시에 대한제국군 참령 이동휘와 제휴하여 교육문화운동을 일으키고, 3.1운동 당시 부상자를 치료하였고, 1953년 퇴임후 귀국하여 1965년에 운명하셨습니다. 1968년 대한민국 독립장을 받았습니다


스탠리 마틴 Stanley Martin
1916년 선교사로 한국에 들어와 중국 길림성 용정에서 제창병원 원장으로 의료 선교활동을 하였고 3.1운동 당시 부상자들을 치료하였습니다. 이후 병원을 독립운동의 집회와 선전물 인쇄공간으로 제공하였고, 1920년 일본군이 독립군을 토벌한다는 명목으로 민간인 대량 학살을 했던 경신참변의 상황을 조사하여 촬영하고, 이를 국제사회에 알리는 일을 하였습니다.
1941년 캐나다에서 사망하였고, 1968년 대한민국 독립장을 받았습니다


프레드릭 맥켄지 Frederick Mckenzie
1904년-1905년, 1906년-1907년 영국 신문 데일리메일의 종군기자로 한국에 방문하여 고종의 강제 퇴위와 군대해산을 계기로 일어난 의병을 취재하여 일제의 학살과 방화 , 의병들의 기록을 남겼습니다. 이후 한국의 독립운동을 세계에 알리고 영국에서 한국 친우회를 조직하여 한국의 독립운동을 후원하였습니다.
정부는 2014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찍었던 의병 사진은 바로....

그리고 마지막 사진 한장


우리가 역사 교과서에서 오랫동안 봐 왔던 그 사진 한장이었습니다. 양평 지평에서 의병활동을 찍은 사진입니다.
드라마 미스터션샤인의 마지막 장면에도 나올만큼 의병활동의 대표적인 사진이었던 바로 그 사진이었죠

그냥 무심코 들어갔던 전시장에서 마지막까지 왠지 모를 뭉클함을 느꼈습니다. 모르긴해도 대부분 의병전쟁의 끝에 운명을 달리하셨을 분들과 그 분들의 모습을 남긴 외국인을 통해 지금 이렇게 오늘을 누리고 있는 거니까요.
오늘도 작은 감사를 배우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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