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령 철종의 이야기속으로... 강화도 용흥궁龍興宮 - 강화도여행지

2019. 9. 23. 00:42카테고리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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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령 철종의 이야기속으로... 강화도 용흥궁 - 강화도여행지

인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 441

  이번 강화여행을 통해 알게 된 곳이 이곳 용흥궁입니다. 인근에 있는 고려궁지와 성공회강화성당을 보려 왔는데, 바로 인근에 용흥궁이 있더군요. 강화도에 연관된 역사 이야기중 하나가 바로 강화도령이라는 철종입니다. 조선 제 25대 왕(재위 1849 ~ 1863)인 철종은 가족들과 강화도로 유배되어 살다가 24대 왕인 헌종이 후사 없이 사망하자 왕위에 오르게 된 임금으로, 용흥궁은 조선 철종임금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거처하던 곳으로 이후 강화유수 정기세가 후에 지은 건물입니다.

 

▲ 용흥궁 龍興宮

 

 

위지도의 빨간색 화살표가 용흥궁의 위치입니다. 강화성당 바로 맞은편에 있습니다
파란화살표가 고려궁지   노란화살표가 성공회강화성당 입니다

 

 

왕이 된 강화도령

후에 철종이 되신 강화도령의 이야기는 정조에 이어 순조, 헌종대에서 후사가 없게 되자 22대 정조의 동생인 은언군의 손자인 철종이 왕위를 잇게 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22대 정조는 아들인 순조의 정치적 배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안동김씨 김조순의 딸을 며느리로 맞아 들이며, 세도정치가 시작되었습니다. 순조의 아들이었던 효명세자가 왕위에 즉위하지 못하고 죽자, 효명세자의 어린 아들인 헌종이 8세에 왕위에 오르며 세도정치가 극에 달하는데, 헌종마저 후사없이 사망하게 되면서 혼란이 시작된거죠

 

헌종이 사후 왕족 6촌내에서 후계를 찾을수 없게 되자, 먼 왕족까지 뒤져 왕위를 이을 후계를 찾게 되는데, 이때 철종의 집안은 역모에 연루되어 강화에 유배생활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결국 순원왕후의 명으로 조선 25대 임금에 즉위하게 되는데, 정치적 기반이 없으니, 지속되는 세도정치에 흔들릴 수 밖에 없는 시절이 이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찌보면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강화에서 목숨을 연명하기 급급한 시절을 보냈고, 왕위에 오른 뒤에도 세도정치에 휘둘리며 안타까운 일생을 보낸 임금이기도 합니다

 

철종의 거처였던 곳, 용흥궁

용흥궁

 

지금의 용흥궁은 왕위 즉위후 새로 지은 건물로, 당시 즉위 전의 강화도령이었던 철종이 살던 초가집을 그대로 둘 수 는 없었을 테니까요...


 

 

안내를 보면, 용흥궁은 조선 철종임금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거처하던 곳으로 이후 강화유수 정기세가 철종 즉위 4년 1853년에 지금과 같은 건물을 짓고 용흥궁 (용=임금, 용이 일어난 곳)이라고 하였습니다. 궁의 건물은 창덕궁의 연경당, 낙선재와 같은 살림집 형식으로 지어져 소박한 분위기를 풍기고, 궁 안에는 철종이 살았던 집임을 기록한 비석과 비각이 있습니다. 현재는 내전 1동, 외전 1동, 별전 1동이 남아있습니다

 

 

사실 막상 들어가보면, 정말 좀 아쉽게도 용흥궁에 대한 안내문이 위의 것이 전부이다 할 정도로 충분치 않았다는 건데요. 대부분 몇 안되는 관람객들도 여기가 어떤 곳인지 모르고 그냥 지나치는 분들이 대부분이었읍니다


 

 

대문을 들어가면 이렇게 용흥궁 관람안내도 라는 보기 안쓰러운 안내도가 하나 붙어 있습니다.


 

 

용흥궁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단아한 형태의 건물입니다.


 

 

집안 곳곳을 돌아봐도 왕위에 오른 사람의 위세를 뽐내기 위한 모습을 찾기는 어려워보이네요


 

 

그보다는 기본적인 품위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것들만 가진 듯 하구요


 

 

용흥궁이라는 이름엔 궁(宮)자가 들어 있지만
그냥 아담한 양반집 같은 느낌인데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인지
강화성당에 비해 찾는 사람이
드믑니다


 

 

용흥궁을 돌아 나와
성공회 강화성당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언덕즈음에 다시
용흥궁 편액이 걸린
문이 있습니다


 

 

 

건물은 없지만 나무 그늘이
있는 정원같은 분위기


 

 

그리고 발치 아래에 보이는
용흥궁 건물들

 

 

아마 당시는 고려궁지(강화유수지) 인근인
이 근처가 강화도의 주요 지역인듯,
가 볼만한 곳들이 이 근처에 다 있습니다

다만 다른곳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보가 부족한 게 좀 아쉽네요.

결국 이런 조선말의 역사는 이후 이어지는
쇄국과 외침의 역사로 이어진다는게
더 아쉽기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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