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화성 정조대왕 능행차(정조 화성능행도)를 따라가 보다

국내 여행/경기도여행 2017.09.21 07:00

수원 화성 정조대왕 능행차(정조 화성능행도)를 따라서..

 

이제 머지않아 수원 화성 문화축제가 열립니다. 조선시대 임금중, 드라마속 많은 이야기 주인공인 정조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행과, 수원 화성의 건설을 통해, 그간의 감춰둔 응어리를 풀어내고 왕권을 일으켜 세운 역사적인 사건이죠. 이후에도 정조대왕은 여러번의 화성 능행을 했는데, 서울에서 수원 화성, 융건릉까지 곳곳에 남겨진 흔적을 따라가 보았습니다

 

 

정조 화성능행도

 

 

1795년 윤 2월에 정조대왕은 동갑인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기념하기 위해,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수원 화성과 사도세자가 묻혀있는 현륭원(지금의 융건릉)을 다녀와서 그 과정을 정리한 "원행을묘정리의궤"를 편찬하여 그 기록이 현재까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여정은 창덕궁을 출발하여 광통교를 지나 배다리를 만들어 한강을 건넌뒤, 행궁이라고 할 수 있는 용양봉저정에서 점심을 드신 후, 시흥 행궁에서 하루를 보냅니다. 이후 화성에 도착하여 문무과 시험을 치뤄 인재를 발굴하고,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현륭원 참배를 하고, 화성에서는 주야간 군사훈련을 통해 왕권을 단단히 하죠

 

 

 

첫 출발은 창덕궁에서 부터 시작입니다.

 

 

 

 

정조대왕능행반차도 (청계천)

 

창덕궁을 떠난 어가 행렬은 광통교를 건너 한강에 이르러 배다리를 건너 임시 행궁인 용양봉저정까지 가게 되죠

청계천에는 정조대왕의 능행 반차도를 모사한 그림이 이어져 있습니다

 

 

정조대왕능행반차도 (청계천)

 

정조대왕능행반차도 (청계천)

 

 

정조대왕능행반차도 (청계천)

 

정조대왕능행반차도 (청계천)

 

 

배다리 양평 세미원

 

임금이 강을 건널때는 용주(龍舟)를 타고 다녔지만, 이로 인해 배를 동원하기 위한 백성들의 고초가 심하다 하여, 비교적 강의 흐름이 완만한 노량나루에 배다리를 만들어 건너게 되었고, 그 앞에 용양봉저정이 지어지게 되었습니다.

 

 

용양봉저정

 

 

용양봉저정은 지금의 한강대교 남단 교차로, 본동 주민센터 옆에 있습니다. 정조가 이곳에서 주위를 살펴보고, " 북쪽의 우뚝한 산과 흘러드는 한강의 모습이 마치 용이 꿈틀하고 봉이 나는것 같아 억만년 가는 국가의 기반을 의미하는 듯 하다"라며 용양봉저정으로 이름 지었다고 합니다




 

용양봉저정

 

이곳에서 점심을 드신 후 첫날은 시흥현 행궁에서 보내게 됩니다.

 

 

  만안교

 

만안교 (경기도 유형문화제 제 38호)는  모든이들을 편안케 하는 다리라는 의미가 담긴 석교입니다. 안양천을 건너기 위해

능행의 다리들은 목조로 지어행차가 지나가면 다시 철거하곤 했었는데, 정조의 능행이 잦다보니 정조의 명으로 석교를 짓게 되었다고 합니다 


  화성행궁 신풍루

 

화성 행궁에 도착하여, 문무과 시험을 치루고, 

 

 

 

융건릉

 

 

융건릉

 

 

융건릉

 

 

융건릉

 

어머니 혜경궁을 모시고 사도세자가 잠들어 있는 현륭원을 참배합니다. 아들도 아들이지만, 남편을 일찍 잃은 혜경궁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그걸 지켜보는 정조의 마음 또한 어떠했을지 충분히 짐작이 갑니다.

 

 

수원 화성

 

 이 날 정조는 화성 서장대에서 낮과 밤으로 군사훈련을 통해 왕의 위엄을 증명해 보이는데, 이는 아버지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 , 그들에게서 왕의 위엄과 정통성을 다시금 굳건히 하는 의미가 있었을 겁니다

 

수원 화성

 

수원 화성 연무대

 

서장대 화성장대

 

 

서장대

 

 

 

다음 날 화성행궁에서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잔치가 열립니다.

 

 

 

 

 

혜경궁홍씨 회갑연

 

 

 정조 임금이 직접 이름을 짓고 현판을 내린 봉수당(奉壽堂 : 장수를 기원함)에서 회갑연이 열립니다. 이로써 정조임금 가슴 깊이 묻어있던 정통성과 회한의 응어리가 풀어지는 기회였고, 남편의 묘에 처음으로 방문하고 아들에게서 회갑연을 받는 어머니 혜경궁은 정말이지 고된 삶의 한스러웠던 순간들이 비로서 풀리는 날이었을 것 같습니다

 

 

 

다음날 행궁의 정문인 신풍루에서 백성들에게 쌀을 나누어 주고, 죽을 쑤어 먹이었고,

 

 

 

낙남헌

 

남낙헌에서 인근의 노인들을 모셔다 양로연을 베풀어주었습니다

 

 

화성행궁

 

 

  수원화성 방화수류정

 

 

이후 방화수류정을 둘러 행궁 뒷편에 있는 득중정에서 활쏘기를 마친뒤, 

 

 

수원 화성

 

다음 날, 능행을 마치고 궁으로 돌아갑니다.

 

 

 

지지대고개

 

 

 

 돌아오는 길에,  이제 이 고개만 넘어가면 멀리서나마 능을 볼 수 없게 되므로, 이곳에서 행차를 멈추었습니다. 늘 능을 뒤돌아보며 아쉬운 발걸음을 천천히 띄었던 곳이어서 이곳을 지지대(느리게 느리게 걷는 언덕)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지지대 고개의 유래인 셈이네요

이렇게 오던 길로 궁까지 되돌아가는 여정이 이어지는데, 이외에도 정조와 연관된 곳들이 몇군데 더 있습니다

 

 

용주사

 

바로 지금의 융건릉 옆에 위치한 용주사인데요, 장흥 가지산 보림사 출신이었던 보일스님이란 분이 정조에게 부모은중경의 내용을 설해주었다고 합니다. 정조는 보일스님이 들려준 부모은중경의 내용에 깊은 감명을 받아 사도세자의 묘를 현륭헌으로 이장하고 그 주변에 폐사된 갈양사터에 절을 새로 중창하여 용주사라 이름 붙여서 사도세자 묘의 능침사찰로 삼았다고 합니다

 

 

용주사

 

 

용주사 부모은중경

 

그래서 용주사에서도 이 곳 부모은중경이 새겨져 있는 이 곳이 가장 정조의 숨결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수원 만석거

 

그리고 또 한곳이 바로 만석거입니다.  정조는 화성을 구축하면서 장용위()를 설치하고, 이곳의 군인들의 급료를 충당하기 위해 둔전을 설치하고,이곳에 농업 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설치된 치수 시설중 하나 입니다.이후 쌀의 수확을 일만석이나 더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해서 만석거 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수원 만석거

 

일종의 둔전인 셈인데, 화성의 호위도 하고 자급자족하 화성의 거주 집단을 만들어 화성이 보다 제대로 뿌리 내리게 하는 역할도 한 셈입니다.

 

 

수원 만석거

 

지금은 만석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어, 살랑 살랑 바람을 맞으며 산책하기 좋은 곳이 되었습니다. 이번 주말 곳곳에서 정조의 화성 행차관련 행사들이 벌어지는데요, 우리 부모님들의 은혜도 같이 생각해 보는 주말이 되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마음에 드셨다면 하트 !! 격려칭찬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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