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 200년전 정조대왕의 능행길과 만안교(萬安橋) 이야기

2015. 11. 7. 22:44국내 여행/경기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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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 200년전 정조대왕의 능행길과 만안교 (萬安橋) 이야기

 경기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 679번지

 

한동안 제가 생각해도 우리 문화재나 기념물에 대한 포스팅이 좀 뜸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경기도 안양시에 있는 만안교를 돌아 보았습니다.

흔히 지역의 이름들을 보다 보면, 그 지역을 대표할 만한 기념물이나 사건들이 유래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안양시 만안구(萬安區)도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만안교(萬安橋)에서 유래가 되었는데요

그 만안교에 얽힌 이야기들을 둘러 보도록 할까 합니다 

 

 

만안교 (경기도 유형문화제 제 38호)는  모든이들을 편안케 하는 다리라는 의미가 담긴 석교입니다

그리고 조선 중기의 임금이신 정조대왕과도 관련된 다리이죠

 

 

 

만안교의 위치는 지하철 1호선 관악역에서 도보로 10~15분 거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만안교 (萬安僑)

 

만안교의 유래는 정조대왕이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능행에서 시작되어집니다.

당시 도성인 한양에서 사도세자의 능이 있는 지금의 화성까지 가는 길은 지금의 동작 - 사당 - 과천을 지나 수원으로 가는 길과

노량진을 거쳐 시흥 - 지금의 안양을 거쳐 수원으로 가는 길이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의 주된 경로는 사당 - 과천을 지나는 길이었다고 하는데요, 여기에 여러가지 문제가 있었나 봅니다

 

 

지금도 사당역을 지나 남태령 고개를 넘어가다 보면 무척이나 고개가 가파른데, 동작에서 사당 과천을 지나는 길은 가파른

고개가 많아 어가의 행렬이 많이 지체가 되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과천에는 사도세자의 처벌에 깊이 관여했던 중신 김상로의 형인 김약로의 묘가 있어, 이를 지나는 정도대왕의 심기가

불편하여, 어가의 행로를 시흥 - 수원쪽으로 바꾸게 되다보니, 자연히 지금의 안양천을 건너게 되었다는 군요

 

 

 

그리하여, 1795년 경기관찰사인 서유방이 3개월의 공사끝에 석교를 완공하였는데, 당시 능행의 다리들은 목조로 지어

행차가 지나가면 다시 철거하곤 했었는데, 정조의 능행이 잦다보니 정조의 명으로 석교를 짓게 되었다고 합니다

 

만안교의 이름은 글자 그대로 "만년동안 영구히 편안히 지날수 있는 다리"라는 의미로, 7개의 홍예(아치형태)를 이루고 있습니다

 

 

만안교는 길이가 31.2m , 폭이 무려 8m에 이르는 당시 교각으로서는 그리 작지 않은 크기 입니다.

1980년 국도 확장때문에 원 위치에서 200m 옮겨진 지금의 위치로 옮겨 졌다고 합니다

지금 다리 상판은 난간이 없는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만안교 (萬安僑)

 

 만안교 (萬安僑)

 

 만안교 (萬安僑)

앞서 설명에 나와 있는 조윤형이 썼다는 만안교비입니다.

만안교 안내문 옆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저녁에도 산책을 즐기는 시민들이 많이 지나 다니시네요

단지 좀 아쉬운건 다리 아래가 거의 물이 흐르지 않는 건천이다 보니, 예전의 모습이 어땠을지 하는 상상의 즐거움이

단절되는 기분이 들어 좀 아쉽긴 했습니다.

 

 

당시에는 화려하고 준엄한 어가의 행렬이 지났을 이 다리가 사실 약간은 소원해 보이는 것도 좀 아쉽다는 느낌도 좀 드네요

 

 

지역 곳곳에 있는 상징적인 기념물과 문화재들의 의미가 좀 더 쉽게 이해 되고 알려지는 것도 무척 의미있는 일일것 같습니다

 

여러 형태의 개발과정속에서 훼손되거나 엉뚱한 곳으로 이전되어 본래의 의미를 상실한 문화재들도 많듯,

이 지역의 대표적인 문화재인 만안교에 대해서도 많이 공유되고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올바른 역사라는게 꼭 교과서를 손댄다고 해서, 후손들의 생활속에 녹아드는 것 만은 아니니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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