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효(孝)를 찾아 떠나는 길, 화성 행궁(2) - 아이들과 가 볼 만한 곳

2013. 3. 27. 09:00국내 여행/경기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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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성행궁도 말그대로 行宮 이기때문에, 모든 구조는 궁궐의 틀을 가지고 있습니다

1편에 이어 행궁의 건물들과 그 안에 담긴 뜻들을 알아 보겠습니다

 

 

 봉수당 옆에 있는 경룡관(景龍館)입니다. 아래 설명드릴 장락당으로 들어가는 누문입니다.

여기서 "경룡"은 제왕을 상징하는 큰 용을 뜻한다고 합니다

 

 

 이곳이 화성행궁의 침전인 장락당(長樂堂)입니다.

정조대왕께서 혜경궁 홍씨의 만수무강을 빌며 직접 편액을 써서 걸었다고 합니다

 

 

이런 궁에 오게 되면 매번 느끼는게 우리 전통 건축양식인 처마의 선의 아름다움입니다

부드러우면서도 힘과 위엄이 있습니다.

 

 

굴뚝의 모양조차도 속되지 않고 정갈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처마의 단청 문양이 화려하고 아름답기 그지 없습니다

 

저기 지붕위에 있는 동물 문양의 토우(土偶)이 어처구니 입니다 

예전 궁궐이나 성문을 지을때 장인들이 마지막에 어처구니를 올리는데, 당연히 올려야 할 어처구니를

빼먹을때 생긴 말이 어처구니 없다란 말이랍니다.

궁의 위엄을 기리는 일을 빼먹었으니, 있을수 없는 엉뚱한 실수, 어처구니없다란 말의 뜻재미있네요 

 

 

 

정조대왕이 나오는 소설이나 드라마를 보면, 유독 활을 잘 쏘시는 강건한 군주의 모습이 나오곤 합니다

실제 활쏘기를 잘 하시고, 임금의 강함을 보이려 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득중정은 정조대왕이 화성행궁안에서 활을 쏘신 곳으로 , 행궁으로 행차시마다 활을 쏘시었고,

이 정자에서 모두 명중시켰다고 하여 득중정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합니다

 

 

 여기 낙남헌은 혜경궁 홍씨 회갑연 기간중 과거시험과 양로연등의 행사가 열린 누각입니다

 

 

 

이곳 노래당은 정조대왕이 왕위에서 물러나 수원에서의 노후생활을 꿈꾸며 지었다는 건물입니다

안타깝게도 정조대왕은 이곳에서 마지막 여생을 보내시지 못하셨죠

 

 

 이곳은 정조의 어진을 모신 화령전안에 있는 운한각입니다

화령전은 순조원년 정조대왕의 유지를 받들어 화성행궁옆에 세운 정조의 영전으로,

영전은 신위를 모신 사당과는 다르게 초상화를 모셔놓고 생전에 계실때 처럼 봉안을 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정조대왕의 어진입니다

 이제 행궁을 둘러보는것도 막바지입니다. 조선시대 궁궐은 침전뒤로 정원들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이 정자의 이름은 미로한정입니다. 행궁내에서는 가장 높은 곳에 있습니다.

 

 

아름답습니다. 이곳 정자에서 내려다 본 화성행궁의 모습과 멀리 시대를 훌쩍 뛰어 넘은 현대의

수원의 모습입니다. 멀리 수원월드컵 경기장 빅버드가 보이네요

 

 

 

 이곳에 있으려니 묘한 시간의 흐름과 질곡의 역사의 느낌이 애잔히 저미어 옵니다

 

 

 

이제 미로한정을 뒤로 행궁여행을 마무리 지어야 겠네요

 

 

 1편에서 보셨던 봉수당

 

 안쪽에서 궁밖을 바로볼때 신풍루의 모습이구요

 

 

 모두의 소원을 적은 소원쪽지들이 줄에 매달려 있습니다

모두들 어떤 소원들을 적으셨을까요?

 

장용영 군사들의 늠름한 기상이 보입니다

화성행궁에서는 '장용영수위의식' 을 재연하곤 하는데, 장용영군사들의 훈련과 행궁을 지키는 모습을 재연합니다

광화문의 수문장 교대식과 같은 문화행사로 매주 일요일 오후 2시에 진행된다고 합니다

 

 

이제 행궁을 나섰습니다.  왠지 모르게 돌아가신 사도세자를 기리는 정조대왕의 애달픈 모습이 느껴지는것 같습니다

한창 당쟁싸움이 심할 시기에 당파의 힘을 조율해가며 왕권을 지켜야 했던 영조대왕의 한숨과

잘못된 걸 돌려놓으려는 젊은 임금 정조대왕의 모습이 더 가슴아프게 느껴지는 하루였습니다

 

아이들과 오실때는 사도세자의 이야기와 정조대왕의 아버지를 향한 효의 마음,

근처 화성을 지을때 등장하는 실학자들의 이야기를 미리 해주고 오시면

뜻깊은 하루를 아이들과도 보내실수 있을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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